Simply Me
나홀로 라이딩 · Grampians
26 May 2014
5 minutes read

그램피언스는 추억이 많은 곳이다. 같은 장소이지만 매번 다른 여행이었다. P와의 알찼던 로드 트립을 시작으로 C와의 게을렀던 주말 여행. L와의 먹자 여행. S에게 야생 캥거루와 호주의 산을 보여주기 위해 왔었고. 배낭을 메고 낯선 사람들과 백패킹도 왔었다. 그리고 이번엔 혼자다. 일행이 있는 여행도 좋지만 오랜만에 혼자하는 여행도 좋을 것 같아서 이번 여행은 혼자 떠나기로 했다. 장소는 Grampians. 새로운 장소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가야 할 곳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자주 와 본 곳이지만 상관 없다. 해보지 않은 일을 하면 되니까. 이번엔 자전거를 싣고 나섰다. 자전거와 떠나는 Grampians. 멜번을 벗어나 자전거를 타보기는 처음이다. 기대된다. 메인코스로 Halls Gap에서 Stawell까지의 왕복 50km를 생각해뒀다. 장거리 자전거 훈련과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는 여행.

토요일 아침. 2주 전 토요일에는 비가 오고 가서 할일도 없고 도무지 갈 기분이 나지 않아 가다가 전화해서 양해를 구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오늘은 아침에 눈을 드니 살짝 설레었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없다. 기온은 조금 낮았지만 라이딩 나가기에 최적의 날씨.

0830 집을 나섰다. 짐도 간단하다. 세면도구, 갈아입을 옷 한벌과 잠옷 한벌. 그리고 자전거. 중간에 맥도날드에 들렀다.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내리지도 않고 드라이브 쓰루에서 커피를 한잔 사서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운전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Halls Gap에 도착했다.

숙소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내부 시설은 여느 숙소와 다를게 없이 평범하고, 침구는 조금 낡았지만 깨끗하고 잘 정리가 되어있었다. 거실에 더블베드, 방에 싱글 두개가 있는 페밀리용 유닛인데 오늘은 혼자 쓰는 호사를 누린다. 친절한 데스크, 마당공간도 널찍해서 맘에 들고 무엇보다 이 대낮에 마당에 널부러져 있는 캥거루가 눈길을 끌었다. 보통 야생 캥거루는 이른 아침이나 밤에 주로 출몰하는데 이 집 마당엔 대낮인데도 캥거루가 여기저기 누워 있다. 애완용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갈정도로 다가가도 도망치거나 하는 거부반응이 없다. 하긴 그램피언스의 캥거루는 먹이로 꼬시면 쉽게 넘어오는 무척 인간 친화적 캥거루이긴 하지. 다음에 솔이를 데리고 꼭 여기에 다시 와야겠다.

바람한점 없이 고요했던 70km

체크인을 하고 짐만 내려놓고 바로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 1230. 점심을 먹고 나섰어야 했는데 아마도 빨리 자전거를 타고 싶었나보다. 밥먹는 것도 까먹다니. 원래는 오늘 간단히 주변으로 20km정도 타고 내일 50km정도를 타야지 생각하며 내일 갈 코스의 반대쪽인 남쪽으로 이동. 포장된 길인데 포장 상태가 무척 거칠다. 힘차게 페달을 굴러보지만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20을 유지하기도 힘들다. 하물며 내리막 속도도 20이 좀 넘는 이상한길이다. 분명히 내리막인데. 체력보다는 괜히 노면을 탓하며 힘겹게 페달을 밟는다.Brambuk Cultural Centre을 지나고 Bellfileld 호수를 지나고. Silverband falls 방향으로 핸들을 틀어 오르막을 열심히 올라갔는데 앗 이럴수가 일방통행. 갔던 길을 돌아와 다시 Halls Gap 에 도착하니 약 16km쯤 달렸다.

이때라도 숙소에 들러서 점심을 먹었어야 했는데 갑자기 노면이 부드러워지면서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기분이 업되어 계속 페달을 구른다. Mt Victoria Rd로 들어서니 또 오르막. 기어를 낮추니 페달링이 의외로 가뿐하다. 하지만 아니야 아니야 오늘은 아니야. 코스에 대한 정보가 없이 시작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조금 오르다가 돌아서 내려온다.

오른쪽은 숙소로 가는길. 왼쪽은 Stawell로 가는 길. 이때 돌아가서 점심을 먹었어야 했는데 뭐에 홀렸는지 왼쪽으로 핸들을 틀었다. 이대로 끝내긴 아쉽다 좀만 갔다가 돌아오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노면 상태도 좋고 몸도 워밍업되어 기분도 좋아졌다.

가지 말았어야 했던 길을 시작하고 말았다. 페달을 밟을 수록 Halls Gap은 뒤로 멀어져 간다. 얼마나 달렸나 배가 고파오기 시작한다. 예정에 없던 라이딩이라 미처 운행 식량을 준비하지 못했다. 자전거를 길옆에 세우고 새들백에서 비상식량을 꺼내어 먹는다. 에너지바가 들어가니 조금 낫다. 길도 아까보다는 훨씬 부드럽고 승차감이 좋다. 쭉 직진. 평평해서 아름다운 길이 계속 이어진다. 몇번의 아주 작은 굴곡이 있엇지만 그냥 거의 평지다. 참말로 부담없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심심한 길. 바람도 없고 조용한 날씨. 햇볕은 왼쪽에서 내리쬐는데 기온이 낮아서 덥지는 않다. 그러고보니 선크림은 고사하고 오늘 아침에 세수도 안했다. ㅋ

계속 달린다. 케이던스80 속도는 25에 맞추려고 해보지만 자꾸 속도가 떨어진다. 틀림없이 에너지가 바닥나서이다. 숙소로 돌아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미 너무 와버렸다. 어쨌든 시작했다. 가보자.이대로 Stawell까지 달리기로 결정했다. 다니는 차도 없고 너무 조용한 이곳은 페달 구르는 소리 뿐. 평소에는 들리지 않았던 케이던스 센서의 리듬이 들린다. 차알칵 차알칵. 페달링 소리가 지겨워져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원래 주행중에는 주변 상황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이어폰을 끼면 안되지만 나는 볼륨을 작게 하고 차도 쪽 귀는 열어둔채 왼쪽 한쪽만 끼고 운행을 한다. 아 이런. 그러고보니 내 핸드폰엔 음악이 없다. 잠깐 오디오북을 듣다가 꺼버린다. 다시 귀를 여니 가끔 지나가는 차소리외에는 내 페달링 소리와 자전거 휠 굴러가는 소리뿐.

어느새 길었던 길이 끝나고 아까 여기까지만 오자라고 보아두었던 mitre 10이 나타났다. 절로 야호가 나왔다. 하지만 이대로는 돌아갈 수 없는 상태. 다시 홀스갭으로 돌아가려면 에너지를 보충해야한다. Stawell 시티 센터 까지는 또다시 3km. 게다가 오르막이다. 기차길을 건너고 조용한 마을을 달려서 시티센터에 도착. 젠장 슈퍼마켓은 오르막길 제일 안쪽에 있다. 자전거를 묶어두고 후딱 들어가 바나나 두개와 물 한병을 샀다.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벤치에 앉아서 신발을 벗고 저린 발가락을 주무르며 바나나 하나를 먹는다. 나머지 하나는 이따가 먹으려고 주머니에 넣고 3시 종이 울리고 출발한다.

역시나 바나나가 최고. 갑자기 엔진의 출력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반대의 내리막에 Stawell 주변의 노면이 부드럽기도 했지만 어쨋든 힘이 나서 페달링에 힘이 붙었다. 평속 25이상을 유지하며 한동안 신나게 달린다. 4km 정도 달렸나. 잠시 멈춰있던 GPS를 다시 켰다. 4 - 5km 정도가 누락되었다. 두계기판의 차이가 3km정도로 줄어든 것을 보니 약 4.5km 정도 기록이 빠진듯. 어쨋든 속도를 유지하며 숙소로 돌아가는 길. 돌아가는 길은 해가 많이 떨어졌고 오가는 차량이 늘어서 전조등도 켰다. Halls gap까지 25km라는 표지가 나왔다. 45.5km에서 gps를 다시켯으니 도착하면 70km쯤 되겠다.

들판에 있는 한 농가에서 불을 피우는지 저멀리 연기에 실려 시골 냄새가 나고 있었다. 해 떨어진 들판에서 풀을 뜯고 있던 양떼들이 음메하고 쳐다본다. 평화로운 풍경에 몸에 힘을 빼고 바람을 느껴본다. 이맛에 라이딩을 하지.

저멀리 반대편에서 깜빡이며 자전거 한대가 온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들어 손인사를 한다. 헬멧 아래로 히끗한 머리가 보여 나이가 있으신 분이라는 것은 가늠했지만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 성별은 알 수가 없었다. 스쳐 지나가는 찰나지만 우리는 얼굴에 반가운 미소가 가득하다.

Halls Gap information centre가 5km 남았다는 표시판이 나타났다. 오는길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빨리왔다. 이제부터는 익숙한 길이다. 다리를 건너 코너를 돌자 YHA가 나타나고 타운에 들어섰다. 예상대로 숙소에 도착하니 GPS는 딱 70km를 찍었다. 비공식 기록은 약 74.5km. 굿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