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번으로
7시 손목시계 알람에 눈을 떴다. 10시부터 7시까지 9시간을 푹 잤다. 보통 텐트에서 자면 중간에 몇 번 깨거나 여덟 시간쯤 자면 허리가 아파서 눈을 뜨게 되는데 지난밤엔 내집처럼 편하게 정말 잘잤다. 따뜻한 침낭에서 나와 주섬 주섬 옷을 갈아입는다.
침낭 지퍼를 내리는 소리를 시작으로 체온으로 데워진 침낭에서 나와 따뜻한 잠옷을 벗고 밤새 차가워진 옷을 입어야 하는 이 순간은 나에겐 마치 캠핑의 아침을 시작하는 의식과도 같다. 잠시 맨살을 드러내는 찰나 남은 잠이 확 달아난다. 손을 뻗어 텐트의 문을 연다. 굿모닝~!
밖에서 자면 평상시보다 아침을 일찍 시작하게 된다. 일단 새소리 때문에 늦게까지 잘 수가 없고. 짐을 정리하고 움직이려면 그 시간만큼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캠핑장의 아침, 그 자체가 좋아서이다. 일어나자마자 캠프 주변을 걷으며 조용한 아침을 맞이하는 이 시간이 나는 정말 좋다.
오늘도 역시 눈을 뜨자마자 눈꼽도 안떼고 걷기 시작했다. 한 남자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바닷가 산책길을 걸어 동쪽 해변에 다다르니 수평선 너머 하늘이 막 붉게 물들고 있었다. 해가 뜨 려면 좀 시간이 남은 듯.
쌀쌀한 이 아침의 바닷가엔 나뿐만이 아니었다. 반팔 차림으로 달리는 열성 러너들과, 서핑을 위해 준비 중인 젊은 서퍼들. 그러고보니 저 멀리 바다엔 이미 수 많은 서퍼들이 바다에 둥둥 떠 파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용한 가운데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아침을 맞고 있었다.
아침 산책을 마치고 텐트로 돌아오니 준민씨가 어디선가 따뜻한 커피 두 잔을 막 사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데크로 가서 모닝커피를 마신다. 구름 한점 바람한점 없는 쨍한 날씨. 자전거 타기엔 좋은 날씬데 파도가 없으니 서퍼들에겐 쫌 미안. 다시 한 번 이 아침을 감탄하며 커피를 다 마시고 나서야 예상보다 시간이 지체된 것을 알았다. 그제서야 서둘러 떠날 준비.
다행히 텐트가 많이 젖지 않았다. 어제 밤에는 자전거 안장까지 금방 이슬이 맺혔는데 아침의 텐트는 생각보다 뽀송뽀송 했다. 풋프린트만 약간 젖어서 대충 털고 정리. 늦어도 8시30분에 출발하자고 했는데 짐을 정리하고 나니 8시30분이다.
예상보다 늦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침은 먹고 출발해야지. 키친으로 가서 각자 준비해온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출발하기로. 아침은 평소에 먹는 전천후 브랙퍼스트 뮤슬리. 블루베리 대신 귤로 비타민 섭취.
출발에 앞서 준비. 오늘은 하루종일 햇볕이 강할 것 같으니 선크림도 다시 한번 꼼꼼하게 바르고 짐도 다시 정리한다. 주행 식량을 꺼내기 쉬운 핸들바백으로 옮기고 남은 짐을 정리하여 양쪽 페니어의 균형을 맞춘다. 마지막으로 자전거 상태를 점검한 후 헬맷을 쓰고 장갑을 끼고 귀마개까지 하면 준비 완료. 날이 추우니 챙길게 많다 ㅋ
오피스에 키를 반납한 후 물병에 물도 가득 채웠다. 자 이제 정말 출발. 숙소를 나서는 순간 손목시계가 09시 정각을 알린다.
쨍하고 상쾌한 아침, 뻥뚤린 길에 기분이 업! 신나게 페달을 밟는아 자전거 도로를 따라 편안하게 달려서 금방 질롱 도착.
어제와는 또다른 뷰. 이 풍경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자전거를 세워 바닷가쪽로 길을 건넜다. 고요한 아침 바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좋은 이 풍경.
이 사진이 이번 여행을 대표하는 사진이다. 어제는 검었던 바다가 오늘은 하늘보다 파랗다. 잠시 앉아서 뷰를 감상.
언제든 질롱에 다시 오면 오늘이 생각 나겠지. 열심히 달렸던 길과 잠시 멈춰서 바라봤던 이 풍경이 생각나겠지. 누군가와 여행을 같이 한다는 것은 시간과 장소를 공유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순간의 느낌을 공유하는 것. ‘좋다’라는 흔한 말로 표현했지만 지금 이 순간은 아주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출발. 매번 느끼는거지만 Geelong에서 M1을 타기까지는 그다지 깔끔하지 않다. 이 구간의 도로를 달리는 것은 아주 용감하거나 아주 급하거나 둘 중 하나. 우리는 C115를 탔다가 Service lane 탔다가 Station Rd.를 잠깐 탔다가 하면서 어렵게 M1에 진입했다.
M1을 계속 달리다가 점심을 먹으러 구지 타운까지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휴게소 버거킹에 잠시 정차했다. 들어와서 보니 ATB 할 때 쉬었던 쉼터네. 햄버거를 하나씩 먹으며 잠시 쉬었다가 선크림도 다시 바르고 출발.
오후가 되니 일기예보대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길은 계속 M1을 타고 가기로 했다. 쭉 뻗은 넓은 갓길을 편하게 달리다가 이런 램프에서만 차를 조심하면 된다.
멜번까지 남은 거리 57km.
멀리 들판 너머 나즈막한 You Yangs가 보인다.
Werribee를 지나 Federation Trial로 접어들었다. 갑자기 조용해진 주변. 차소리를 안들어도 되니 좋다. 조용해진 주변 때문인지 더 천천히 페달을 밟게 된다. 준민씬 엉덩이가 아프다고 했지만 다행히 크게 불편한 곳은 없는 것 같다.
Federation Trail이 끝나갈 즈음.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한다. 바람도 적당히 불어오고 햇볕도 따뜻하니 젖은 텐트 말리기에 딱 좋은 순간. 텐트를 잔디밭에 널어놓고 마지막 간식을 나눠 먹으며 벤치에 앉아서 망중한. 어제 출발한 곳이라 그런지 왠지 다 온 것 같은 느낌. 아직 30km는 족히 남았는데 말이다. 이제 저녁으로 뭘 먹을까를 고민하는 우리.
다시 출발해 마지막을 열심히 달린다. 빨리 끝내고 따뜻한 밥을 먹고팠던 우리는 Brooklyn에서 shortcut을 선택했다. 집에 도착한 시각 17시 정각. 어제와 같은 시간이다.
짐을 후딱 내려놓고 시티로 나가 얼큰한 부대찌개로 마무리를 장식했다. 즐거웠던 두번째 바이크 투어링. 끝.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가서 잠만 자고 돌아왔으니 자전거 여행이라고 하기보단 그냥 1박2일 롱라이딩이라고 하는게 맞을런지도. 다음번엔 더 여유로운 시간에 더 좋은 곳으로 가야겠다.
Topic: torquay-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