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ly Me
완도군 자전거 투어링 #4 고금도·신지도
30 May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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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완도로

잠이 들 무렵 바다는 더 없이 평화로웠다. 잠이 들었다가 뭔가 부산함에 눈을 떴다. 바람이 텐트를 세게 흔들었고 파도 소리가 쏴쏴 들려왔다. 비가 오나 해서 손을 내밀어보니 땅은 말랐다. 텐트위로 뭔가 떨어지던 투두둑 소리는 바람에 솔잎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뭐여 심난하게.

다시 잠을 청했다가 이번엔 닭들이 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4시. 해 뜨려면 아직 한시간도 더 남았는데 왜 저렇게 꽥꽥 울어싸는지 원. 실컷 자고 눈을 떴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눈은 안떠지고 목도 아프고 잇몸도 부었다. 샅도 아프다. 상쾌하지 않았다. 잠을 제대로 못자서 그런가, 개인 위생에 좀 더 신경을 써야했나.

몸부터 좀 챙기고 어떻게 움직일지 생각해 봐야겠다 싶어 짐을 정리하고 슬렁슬렁 자전거를 타고 청산도항에 왔다. 첫 배가 막 떠나려고 하고 있었다. 옆에 자전거를 세우려는데 아저씨가 물었다.

_ 배 탈거에요?
_ (얼떨결에) 네? 네.
_ 얼른 서둘러요!

몸이 아프면 여행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없다. 일단 육지로 가자. 얼렁 표를 끊고 배에 올랐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첫배니 당연히 사람이 없겠거니 하며 객실로 들어섰는데 왠걸. 객실은 하나같이 똑같은 철모 파마에, 알록달록한 옷을 입으신 할머니들로 꽉 차 있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몇 몇 보였다. 0630 첫배가 만원이라니, 반전이었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한 할머니가 해남에서 농사지은 고구마 줄긴지 뭔지를 살 사람을 찾느라 소란스러웠다. 아이패드로 사진을 착착 넘기면서 영업을 하는데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이런 외딴 섬의 할머니들이 나도 못쓰는 아이패드를 쓰고 있다니 놀라워하고 있는 찰나, 고구마 줄기를 사겠다는 할머니가 나타났다. 주문도 아이패드로 하시나 싶었는데, ‘누가 연필 좀 줘봐’ 하시더니 가방에서 꼬깃한 종이를 꺼내 메모를 했다. 아이패드를 받침대 삼아. ㅋㅋ 두 번째 반전이었다. 할머니들을 구경하다 보니 금새 50분이 흘렀다.

완도항에 도착하니 7시가 좀 넘었다. 개인 정비를 하고 페니어를 맡겨둘 물품 보관함을 찾는데 보이지 않았다. 경비보시는 아저씨께 물어보니 물품 보관함은 없다고. 흠. 짐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안내소에 맡기고 가기로 했다. 아직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시간이라 한쪽 구석에 페니어 두개를 놓고 메모를 한 장 남겼다.

아침을 먹기로 했다. 뭔가 뜨끈하고 얼큰한 것을 생각하다가 어제 본 순두부집이 떠올랐다. 완도항에서 5분 거리. 영업도 새벽부터 시작한다. 당장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서 한그릇을 뚝딱 비웠다. 밥을 먹고 나니 9시가 넘었길래 다시 완도항으로 왔다. 안내소에 가서 맡겨둔 짐에 대해 설명을 드리니 분실은 책임지지 않으나 맡겨놓는 건 상관없으니 아무때나 와서 찾아가란다.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

고금도를 향해 페달을 밟았다. 날씨는 괜찮은데 미세먼지인지 뭔지 시야가 뿌옇다. 오늘 원래 계획은 신지도를 찍고 고금도를 지나 조약도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코스였는데 역시나 77번 국도는 만만치 않았다. 이틀내내 한적한 섬 해안길을 달리다가 차가 쌩쌩 달리는 국도를 달리려니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신지도를 넘어가니 도로 공사중. 아스팔트를 깔고 있는지 먼지와 냄새가 매캐했다. 공사구간을 지나니 하루치를 다 달린 듯 힘이 빠졌다. 햇볕은 따갑고 먼지는 뿌옇고, 라이딩이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게다가 이 길을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니 더 이상 페달을 밟기가 망설여졌다.

갈까 말까 고민을 하며 장보고 대교를 건넜다. 장보고 대교에 잠시 서서 마량 버스터미널에 전화를 걸었다. ‘거기서 완도 가는 버스 있나요?’ 없댄다. 고금 가서 갈아타야 한단다. 그럼 고금 버스터미널까지라도 가보자 마음을 먹고 페달을 밟았다. 장보고 대교를 내려왔는데 저 멀리 보이는 언덕길. 차들은 줄지어 오는데 1차선에 갓길도 없다. 가야할 길이면 가겠지만 고스란히 돌아와야 할 길이었다. 안되겠다. 여기서 돌아가기로 했다.

신지도

다시 장보고 대교를 건너 신지도 명사십리 해변으로 향했다. 어차피 하루종일 남는 시간,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내다 오후 늦게 공사가 끝날 때쯤 완도로 넘어갈 셈이었다. 울퉁불퉁한 도로. 잘 깔아둔 도로를 깨고 공사를 했으면 제대로 덮어놓던가, 길은 얼룩덜룩 울퉁불퉁 아주 개판이었다. 요리조리 피해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명사십리 해변은 정말 십리라도 될 듯 끝이 없었다. 유명한 곳인지 바닷가 주변은 상업적인 해변 분위기가 났다. 바닷가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커피를 한 잔 마시려고 편의점으로 가는데 한 아주머니가 반갑게 다가오며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오셨어요?’

혼자 왔는데 반갑다며 얘기좀 하자신다. 커피를 한 잔 사들고 나오니 아주머니가 토마토를 건냈다. 장흥으로 귀촌을 해서 토마토 농사를 짓는 중이고, 학교 방학이라 남편에겐 비밀 휴가를 내고 바닷가에 바람 쐬러 나왔단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무려 4시간이나 이어졌다. 귀촌 얘기로 시작해서 농사 얘기를 한참 주고 받았고, 직장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직장 얘기로 넘어갔다. 자연스럽게 자식 얘기로 넘어가고 결혼 얘기로 거슬러 올라가 아주머니 어린 시절 얘기까지. 아주머니는 나에게 아무한테도 하지 않은 비밀 얘기까지 털어놨다. 한 여자의 인생 일대기를 듣고 나니 몇 편의 드라마를 본 것만 같았다. 어느덧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완도까지 태워다 주시겠다고 했지만 바닷가에서 인사를 나눴다.

신지도 명사십리 해변
신지도 명사십리 해변

다시 완도

다시 완도로 넘어왔다. 공사는 대충 끝나 있었다. 신지대교를 건너 램프를 돌아 나오는데 기분이 좋아졌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글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페달링이 빨라졌다. 저녁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완도 시내를 배회하다 버스 터미널 근처에서 떡볶이 집 발견. 김밥을 먹을까 떡볶이를 먹을까 망설이다가 떡볶이를 1인분 주문했다. 잠시 후, ‘떡볶이 나왔습니다.’ 카운터로 가서 쟁반을 받아들었는데 응? 이게 뭐야. 쟁반에 덩그러니 하얀 그릇 하나. 빨간 물에 둥둥 떠 있는 떡들. 국물도 없고 단무지도 없다. 정성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먹고 싶은 기분이 1도 들지 않는, 내 돈 주고 시킨 떡볶이 중에 가장 황당한 비주얼이었다. 감옥에서 배식을 받을 때 이런 기분일까. 기분 탓인지 떡은 탱탱 불고 국물에선 뭔지 모를 가루가 씹혔다. 짜증이 올라왔다. 왠만한 음식 안가리는 편이고 떡볶이는 완전 좋아하는데 이건 아니었다. 두 개 먹고 관뒀다. 난 오늘자로 떡볶이가 싫어졌다.

씨불씨불 하며 달리는데 김밥집이 보였다. 떡볶이에게 당한 배신감이 식지 않은채로 들어가 퉁명하게 김밥을 한 줄 시켰다. 나의 퉁명함에 비해 서비스는 극진했다. 앞치마를 두른 직원이 쟁반에 예쁜 김밥과 김치와 단무지와 국물을 가져와 테이블에 곱게 내려놨다. 젓가락을 들어 정갈하게 놓여진 김밥을 한 조각 입에 넣었다. 김은 바삭했고 야채는 신선했다. 그 어느 김밥보다 훌륭했다. 떡볶이 집에 낸 3천원이 무척 아까웠다.

배불리 먹었으니 이제 좀 씻자. 완도항 터미널에 가서 짐을 정리하고 목욕탕으로 향했다. 비가 한 두방울 씩 떨어졌다. 고금도 갔으면 어쩔뻔했어. 이번엔 완도 항 근처에 있는 찜질방으로 가기로 했다. 지난 번 왔을 때 별로였던 찜질방이라 몸만 씻고 나올 생각으로 목욕비만 내고 들어가 두 시간 정도 뜨끈하게 몸을 풀고 나왔다. 비는 그쳤고 바람은 상쾌했다.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느끼며 항구 주변을 정처없이 돌아다녔다. 항 주변엔 낚시꾼들, 산책하는 사람들, 자전거 타는 사람들, 데이트 하는 연인들,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이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한 시간 정도 완도 시내 골목골목을 휘젓고 다니다가 완도 타워에 가보기로 했다. 가파른 오르막을 지그재그로 올라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계단으로 이어지는 언덕을 걸어 올랐다. 혼자 운동하던 아주머니가 경계 섞인 눈빛으로 힐끔거렸다. 괜찮아요 나쁜 사람 아니에요. 지난번에는 저녁에 와서 일몰을 봤었는데, 이번엔 야경이다. 나무 사이로 완도 시내의 불빛들이 반짝거렸다. 그때도 혼자였고, 이번에도 혼자다. 가끔은 혼자라는게 쓸쓸하다. 특히나 이런 아름다운 순간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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