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에서 한 달 하고도 나흘을 살았다. (8월 6일 날 내려가서 9월 9일 날 귀경)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김해에 비어있는 집이 있다길래. 안 살아 본 데서 한 번 살아보면 좋을 것 같아서 별 고민 없이 내려갔다.
갈 때는 자매들과 짐을 실은 차를 타고 가고 올 때는 혼자 비행기를 탔다. 중간에 2주 정도 차 없이 혼자 지냈는데 지하철 쇼핑센터 가까워서 걸어 다니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사실 밖에 나가지 않고 거의 집에 있었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냥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집은 넓었고 쾌적했고 무엇보다 뷰가 좋았다.
집은 전문 숙소가 아닌 아무것도 없는 빈 집이었다. 다행히 빌트인 에어컨이 있었고 가스는 도착해서 신청했다. 부엌살림과 이부자리는 차로 싣고 내려갔고, 계절을 고려해 작은 냉장고만 하나 들였다. 접이식 미니 테이블 2개와 캠핑 체어 3개가 가구의 전부였다. 뜨거운 물 잘 나왔고 더울 땐 에어컨을 켜고 지냈다. 부족할 게 없었다.
우리가 도착했던 8월 초에는 도서관이 문을 열고 심지어 열람실에 앉아서 책을 볼 수도 있었다. 게다가 책을 10권이나 빌릴 수 있어서 집에 책을 잔뜩 빌려다 놓고 읽을 수 있었다. 책도 빌리고 dvd도 빌리고 인터넷도 사용하고 좋았는데 2주 정도 후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도서관도 무기한 폐쇄되었다. 매우 아쉬웠던 점 중 하나다.
그리고 소음. 김해 공항이 근처에 있고 중간에 아무것도 없어서인지 비행기 소음이 꽤 크게 들렸다. 창문을 열어두면 차 소음도 무시할 수 없었다. 처음 며칠은 밤에 자다가 비행기 소리에 몇 번 깬 적도 있다. 근데 신기하게 이마저도 나중에는 익숙해졌다.
사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집에 인터넷 연결이 없었다는 점. 핸드폰은 무제한 요금제였지만 테더링은 무제한 용량에 포함되지 않아서 랩탑에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었다. 인터넷을 들일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봤지만 결국 한 달 동안 인터넷 없이 지냈다. 답답하고 불편했지만 어느새 핸드폰으로 검색하고 글쓰는 게 익숙해졌다. 정 안되겠다 싶을 땐 근처에 있는 커피샵을 이용했다. 아마도 인터넷이 되었다면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을 테니 안 된 게 오히려 나에겐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몇 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만족도가 높았다. 한달살기를 할때마다 느끼지만 여기도 공간에 짐이 없으니 여유로워서 좋았다. 하지만 너무 넓은 집은 관리가 어려웠다. 매일 30분씩 걸레질을 하며 그렇게 생각했고 혼자 새벽에 물을 퍼내며 확신했다. 나에게 필요한 공간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공간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지만 환경적 만족도는 정말 최고였다. 아무것도 없는 이 집에서 내가 거의 밖에 나가지 않고 한 달을 머물 수 있었던 이유는 뷰다. 29층 동남향이었는데 그 앞에 아무것도 없이 김해평야만 넓게 펼쳐진 곳이었다. 다양한 색깔의 초록빛 들판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뷰만 좋은 게 아니라 해도 너무 잘 들었다. 동남향이라 오전 내내 해가 듬뿍 쏟아졌다. 맑은 날엔 뜨거워서 아침에 저절로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하늘이 보이는 것은 마음을 여유롭게, 몸은 부지런하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탁트인 뷰는 매우 큰 행복감을 준다는 것도.
29층이 주는 뷰는 더 없이 훌륭했지만 고층 아파트에 사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라는 것도 알았다. 엘레베이터를 오래 기다려야 하는 점이 생각보다 불편했고, 모르는 사람들과 밀폐된 공간에 오랫동안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나중에는 미리 집에서 엘리베이터를 호출하고 나가는데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고층 아파트에는 살고 싶지 않더라. 아, 신기하게도 이 동네 사람들에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는 문화가 있었다. 처음보는 나에게도 사람들이 친절하게 인사를 하길래 어떻게 이런 문화가 생긴 건지 궁금하고 신기했지만 모르는 사람들과 마주치고 인사하는 것은 성가신 일이었다.
내려갈 땐 장마였고 비가 지나니 폭염. 그리고 또 태풍. 무려 세 번의 태풍을 맞았다. 그중 한 번은 집에 물이 들이쳐 혼자 밤사이 물을 퍼냈다. 암튼 날씨 때문에 많은 걸 하지는 못했다. 자전거도 가지고 갈까 많이 고민했는데 관뒀다. 가져왔어도 거의 안 탔을 듯.
소박한 일상을 지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운동을 했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우쿨렐레를 쳤다. 틈틈히 등산을 하고, 김해, 거제도, 통영, 부산 등을 여행했다. 엄청 많이 돌아다닐 줄 알았는데 집에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 어딜 가고 싶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멋진 여름 휴가였다. 정말 암 생각 없이 잘 먹고 잘 자고 푹 쉬었다. 그렇게 2020의 여름이 다 지나갔다. 올 여름은 너무 짧았다.